2010년 8월 9일 월요일

[고양이의 속삭임] 비비고 냄새 묻히기

고양이의 턱, 입술, 관자놀이, 그리고 꼬리 아래쪽에는 특수한 피지선이 있어 끈적한 분비물을 만들어낸다. 분비물은 마치 명함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고양이는 이 냄새를 자기 자신, 혹은 자기가 속한 그룹 내의 다른 고양이나 사람, 다른 동물 주위에 묻혀 영역을 표시한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녀석이 뺨과 입술, 그리고 머리를 손에 문지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정 부위를 만져 주면 고양이는 단순히 머리나 등을 쓰다듬어 줄 때 보다 더 좋아하는 듯이 보인다.

- Cat Whisperer. p41




지로를 데리고 온지 일주일 후, 녀석은 마음을 열고 나를 동료로 인정하였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자주 보는 일이지만,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사람에게 때때로 길고양이가 나타나 다리밑을 비비고 가는 일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고양이의 행동을 "간택한다" 고 얘기한다. 고양이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 마음에 든 상대에게 고양이는 분비선으로 부터 나오는 자신의 고유한 냄새를 묻힌다.

"너는 내꺼다옹. 그러니 얼른 맛있는 간식을 내놓는게 좋을 것이야."

길고양이가 어떤 절차로 인간을 간택하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 치밀하고, 과학적인 계산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고양이관상법 이라 불리는 그 기술 덕분에, 고양이들은 자신에게 간식을 가져다 줄 가련한 인간을 알아보고 표시를 남기는 것 이다. 고양이에게 간택받은 인간은 자신이 고양이의 간교한 술수에 농락당했다는 사실 조차 인지 못하고, '그 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간식을 내놓는다. 설령 간식이 없더라 해도 어디서든 구해다 바치기 마련이다.

왜냐면, 고양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할 법한 인간을 골랐으니까.

고양이 관상법은 대체로 정확하다. 유의확률 .05 미만의 수준으로 귀무가설을 기각할 수 없다.
간택받은 인간은 충실한 셔틀로 전락하고 마는데, 고양이의 간택을 받은 인간이 간식을 주는 자발적 복종 행위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고양이가 바르는 분비선이 후각을 통해 뇌신경을 마비시켜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설이 지배적이긴 하나, 복종 행위를 하는 인간들의 인지능력을 비롯한 뇌기능 장애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다.
한편으로 고양이가 독특한 뇌파를 이용하여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양식에 영향을 주는 인셉션을 조작 한다는 설이 있다. 이른바, 고양이에게 홀렸다는 설이다. 학계는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대중을 혹세무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의견으로 일축하고 있으나, 고양이에게 홀려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고 길을 멈춰 간식을 준 인간들의 의견이 인셉션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느날 길을가다, 혹은 같이 동거중인 고양이가 다가와 얼굴을 비비며 인사를 한다면 비녀로 허벅지를 찌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의무를 망각하고 그 자리를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고양이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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